이 작품은 ‘존재와 부재’라는 주제로, 소리가 공간을 조성하는 주체가 되는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 기반의 1인 퍼포먼스이다. 이 공연은 블랙박스 공간 안에서, 어떻게 관객에게 익숙한 퍼포머의 몸(body)이라는 시각적 요소를 배제하고, 극도로 어두운 조명 아래 사운드라는 청각적 요소를 중점적으로 활용하여 관객을 연극적 환상으로 초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실험이었다.
(1)대부분의 동시대 퍼포먼스가 시각적인 이미지 작업에 치중하여 창작된다는 점에서 그 틀을 벗어나고자 시도되었고
(2)퍼포머라는 존재(existence)를 시각적으로 노출하지 않아 존재의 ‘물리적인 부재함(absence)’을 부각하는 동시에, 주변의 사운드와 ‘전화’라는 매체를 통해 화자(퍼포머)가 계속해서 관객에게 말을 걸어오는 ‘여전히 어딘가에 존재하는 상태(presence)’를 인지시켜, 존재와 부재의 현상이 공존하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했다.
(3)몰입을 극대화시키는 이머시브 사운드스케이프와 공연의 몰입을 방해하며 이목을 집중시키는 ‘소음’(attention-seeking noise)으로 분류되는 전화벨 소리를 의도적으로 병치함으로써 공연 중 예기치 못한 소음은 몰입된 현재의 상태와 분위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찰하고자했다.
이 과정에서 (4)반복적으로 들려오는 의문의 전화벨 소리가 관객의 인식과 행동에는 어떤 변화를 끌어내는지(우연적인 사고(accident)라 생각하고 무시할 것인지, 전화기를 찾아내 응답할 것인지 등)에 대한 반응을 실험해보고자했다.
이와 같은 설정은 관객에게 퍼포먼스에 개입하여 다음 전개상황에 관여할 수 있는 결정권을 부여하며, 공연 안에서 관객의 권한, 힘, 역할 그리고 존재에 대해 재고해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했다. 이외에도 멀티미디어 혹은 디지털미디어 퍼포먼스가 아닌 공연 매체에서 퍼포머의 몸(body)의 부재는 가능한 것인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무엇이 퍼포머의 몸을 대체할 수 있는 지에 대해 탐구하고 실험해볼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
사운드스케이프가 담고 있는 전체적인 이야기는 영국 유학 중에 마주했던 사건과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한 달 동안 실종되었던 한국 유학생의 시체가 템즈 강변에서 발견된 일, 번화한 옥스퍼드 스트리트 한복판에서 영국의 십대 무리에게 폭행당하는 여성 유학생들을 방관하기만 한 사람들, 그리고 태어나 처음으로 런던의 오래된 건물 엘리베이터에 갇혔던 나의 상황들이 주가 되었다. 낯선 곳에서 마주한 연약성, 취약성(vulnerability)과 위험에 처했을 때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나 보호를 받을 수 없음에서 오는 답답함, 불편함, 불안, 좌절, 공포와 같은 내면의 상태를 물소리, 심연의 소리, 고장 난 엘리베이터의 소리 등을 섞어 사전에 녹음·제작하였고, 퍼포먼스 도중에도 관객들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현장에 존재하고 있는 퍼포머의 라이브 음성과 벽을 두들기는 등 누군가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하는 사운드들이 마이크와 스피커를 통해 전해졌다.
이 작품을 통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동시대의 이슈나 사건, 개인적인 경험과 내적 상태를 어떠한 공연언어로 번역하여 예술화할 수 있는지 그 방법론, 즉 드라마트루그에 대해 스스로 고민해볼 수 있었다. 또한, 익숙했던 시각적 작업이 아닌 청각적 작업을 시도함으로써 예술가로서 새로운 도전과제를 마주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실험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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